어느 해에 들어서 첫 눈 내리는 날 밤이었다.
첫눈이라 하여도, 가루처럼 쌀쌀하게 부서진 그런 눈이 아니라, 꽃 이파리같은 흰송이가 소복소복 흠뻑 내리는 함박눈이었다.
저녁 녘부터 내린 것인데.. 밤이 깊을수록 이곳 골목길은 흰 눈속에 온통 묻히는 듯 싶었다.
오고 가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더욱 쓸쓸한 이 골목길-
벌써 길바닥은 발목이 잘 빠지지 않을만큼 쌓였다. 그
것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과일 가게에서 흘려오는 불빛이 길바닥을 으스름하게 비쳤기 때문으로 보였다.
그 때, 불빛 속에 한 소녀가 지나가는 것이 얼굴 보였다.
소녀는 매우 바쁜 걸음으로 흠뻑 쌓인 눈길을 미끄러지면서 골목을 더듬어 올라가는 것이었다.